반응형

공덕동 만리재 이야기

 

 

세종대왕-최만리-만리재
세종대왕-최만리-만리재
세종대왕-최만리-만리재
세종대왕-최만리-만리재

 

 

 

 

 

 

세종 때의 학자 최만리는 술을 몹시 좋아하였다. 어느 날은 취한 채로 어전에 들어가 임금을 뵈었더니 세종이 만리를 걱정하여 "경은 몸을 생각하여 앞으로 세 잔 이상은 마시지 마오." 하였다. 왕명을 어길 수 없었던 만리는 자신이 쓸 술잔을 스스로 크게 만들어 하루 세 잔씩만 마셨다.

 

후에 세종이 만리를 접견할 때 술을 많이 마셨음을 알고 나무라기를 "경은 또 취기를 띠고 나왔으니 어떻게 된 것이오?" 하니 옆에 있던 동료가 "만리는 어명대로 세 잔만을 마셨을 뿐입니다. 단지 스스로 큰 술잔을 만들어 마셨습니다." 하였다. 이에 세종은 껄껄 웃으며 "경이 왕명을 그토록 철저히 지킬 줄은 몰랐소." 하고 큰 은 술잔을 만들게 하여 그 잔을 집현전 본관에 갖다 두고 수시로 만리를 접대하게 하였다.

 

만리를 아꼈던 세종은 신문(新門) 밖의 저택을 하사했고, 세상 사람들은 이곳이 천 칸의 집이 들어설 만큼 넓다하여 천간허(天間墟)라 불렀으며, 그 고개 이름을 만리재(萬理岾)라 불렀다.

 

 

 

 

<자료출처> 마포문화관광 - 동네에 전해져 온 설화

반응형
  •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
  •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
  • 페이스북 공유하기
  •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